청랑 인재 식견

윤석열 대통령, 독재자 논란? 플라톤이 말한 이상적인 지도자

JadeWolveS 2025. 2. 22. 15:00
반응형

민주주의에 반하는 리더, 독재자

독재자(獨裁者)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tic system)는 한 국가의 주권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가에 속한 모든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국민의 권력을 기반으로 현실 정치를 구현하는 사상 또는 체제를 말합니다. 독재자는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통령 권한인 계엄을 섣불리 사용했다는 이유로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대통령에서 하루아침에 내란 수괴, 독재자라는 소리를 듣고 구속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프랑스혁명 이후 세계적으로 대세가 되어가면서 독재자라는 말은 리더가 될 사람으로서 금기시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독재자가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은 독재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그가 쓴 책 '국가론'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독재자이지만 철학적 지식을 갖춘 자비롭고 지혜로운 독재자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는 독재자를 선택했을까요?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Socrates)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그리스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민주주의가 과연 옳은 선택을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고찰을 했을 것입니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지하면서도 지혜로운 독재자라면 이상적인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다음도 이상적인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민주주의가 이상적인 국가체제라 주장하였습니다. 철학적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이상적인 독재자가 과거 민주주의 국가를 어떻게 바꿨는지 알아봅시다.

세계의 독재자들


가난한 항구 싱가포르를 경제 강국으로 만든 리콴유 총리

리콴유(李光耀)는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서, 그의 통치 아래 싱가포르는 가난한 도시에서 세계적인 금융 및 무역 중심지로 변모하였습니다. 그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간주되며, 그의 정책과 리더십은 싱가포르의 현대화와 경제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에서 태어났으며, 런던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엘리트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귀국 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 운동에 참여하고 정치에 참여합니다.

1954년에 리콴유는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 PAP)을 공동 창당하였고, 이후 싱가포르의 독립을 위한 주요 정치적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1959년 싱가포르가 자치 정부를 수립할 때, 그는 초대 총리가 되었습니다. 1963년에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하였지만, 두 해 후인 1965년에 싱가포르는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리콴유는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홀대했으며, 두 국가 간의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리콴유는 가난한 싱가포르를 꼭 잘 사는 국가로 만들어 보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합니다. 싱가포르는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를 파격적으로 낮췄습니다.

그 결과 글로벌 대기업들이 싱가포르에 본사를 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모이자 자연스럽게 금융업도 발전하였습니다. 싱가포르는 금융 시스템도 빠르게 개혁하면서 투명성을 강조하며 기업들의 니즈를 맞춰나갔습니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싱가포르는 인재가 곧 국가의 자산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을 통해 상급학교와 하급 학교로 나눴습니다. 학년마다 치러지는 이 시험은 싱가포르에 사는 국민이라면 피할 수 숙명이었습니다. 시험을 못 치면 노동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최상급 학교에 진학한 인재는 즉시 글로벌 기업에 채용이 되었습니다. 싱가포르는 뛰어난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고자 높은 연봉을 주며 공무원으로 채용했습니다.

리콴유의 차별적 교육 정책은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싱가포르 인재는 그들의 그 몫을 톡톡히 해냈으며 싱가포르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다민족 국가였기에 갈등을 줄이기 위해 엄중한 법을 세웠으며, 투명한 시스템을 통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법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외국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한 청년이 싱가포르에서 난동을 피웠고, 싱가포르는 자국의 법에 따라 채찍질하는 처벌을 내렸습니다. 미국 정부는 자국민이 채찍질을 당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리콴유에게 법 처벌이 과격하니 고려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세계 강국인 미국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것이 없는 싱가포르지만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리콴유는 미국 청년을 자국법에 따라 채찍질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으며, 싱가포르 투명하고 공정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싱가포르는 독립 초기 말레이시아 눈치를 보던 가난한 항구 도시 국가에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리콴유의 개혁은 싱가포르 국민 모두를 잘 살게 했으나, 그는 민주주의 시스템 위에서 독재자처럼 행동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부라 불리지만 독재자라는 단어도 따라다녔습니다.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

청랑이 추천하는 다른 글을 읽고 싶다면 클릭하세요!
 

한국 근현대사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비상계엄을 선언한 대통령윤석열 대통령은 12월 3일 밤 10시 20분쯤 1차 담화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비상계엄은 엄중히 경계한다는 뜻으로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jwsbook.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