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 비리를 저지른 영의정 황희
"세종 12년(1430) 11월 기록에는 제주감목관 태석균이 감목을 잘못하여 국마 1,000여 필이 죽었다. 처벌을 받게 된 태석균은 좌의정 oo에게 구명운동을 펼친 끝에, 좌의정 oo은 죄를 처결하기도 전에 태석균의 고신(告身)에 서명토록 압력을 넣고 형량도 솜방망이 수준인 장 1백 대로 마무리 지었다.", "정권을 잡은 여러 해 동안에 매관매직하고 형옥을 팔아 뇌물을 받았으나..." 세종실록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위에 언급된 세종실록의 ‘좌의정 oo’는 명재상 황희이다. 청렴결백한 군신의 상징 '황희'가 이처럼 청탁 비리를 저질렀다니. 세종은 그러나 황희를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황희의 숨은 역량을 세종은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희는 세종이 추진하는 정책을 탁월한 정치적 감각으로 잘 수행해냈다. 요즘이라면 황희는 어떤 처지가 되었을까. 청탁 비리가 흠결이 되어서 국무총리라는 자리에 오르기는커녕 감옥에 갇히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공무 중 낮술 즐긴 대제학 윤회
"빈객(賓客) 윤회(尹淮)가 서연(書筵)에 나아가서 강의를 맡아야 하는데 술에 취하여 참석하지 아니하였으니, 도무지 공경하며 삼가는 뜻이 없습니다. 청하건대, 그 죄를 다스리소서." 윤회가 공무 중에 술을 마셨다는 세종실록 내용이다. 만약 요즘 공무원 중에서, 그것도 장관급 고위직이 공무수행 중에 낮술을 하다 들통이 나면 엄한 처벌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세종은 윤회의 죄를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종이 윤회의 능력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실록에 있다. "술에 취해 좌우의 부축을 받고 왕 앞에 불려 나가 선제(宣制 : 조서)를 기초(起草)하라는 명령을 받자 붓대가 나는 듯이 움직여 세종은 참으로 천재라고 탄복했으며, 세상 사람들은 문성(文星)·주성(酒星)의 정기가 합해 윤회 같은 현인을 낳았다고 했다." 세종은 공무 중에 마신 낮술에 대한 책임 추궁 대신 윤회의 능력을 더 높이 사 선처하는 아량을 베푼 것이다.
도덕성보다 능력을 선택한 세종
회사나 국가를 잘 경영하려면 반드시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다. 조선 4대 왕인 세종도 인재를 그 무엇보다 중시, 개국 초기 조선의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세종은 자신의 통치 철학을 구현해 줄 신하들이라면 그들의 도덕적 흠결도 과감히 눈감아주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만약 황희가 없었다면 장영실이 발탁되지 못했을 것이고, 윤회가 없었다면 명나라와의 외교에도 마찰이 생겼을 것이다. 물론 세종도 완벽한 인격체는 아니었다. 과도한 성생활이 그의 건강을 해치게 할 정도였으니까. 세종의 인물을 볼 줄 아는 혜안은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인재를 보호한 세종.
그의 용인술 덕분에 재기할 기회를 얻은 황희, 윤회와 같은 인재들은
조정과 나라를 위해 맘껏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역사는 인재가 저지른 한때의 흠결보다 그들이 이룩해 낸 경륜과 큰 업적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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