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사냥이 끝나면 잡아 먹히는 사냥개
일부 정치인은 어떤 이들의 능력을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필요할 때 쓰다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줄도 알아야 하지만 과한 욕심을 부르면 결국 버림을 받는 법이다. 과거 한고조 유방(劉邦)은 뛰어난 군사 한신(韓信)을 이용하여 초나라 항우(項羽)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방은 한신이 훗날 반란을 일으켜 한나라의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힘들 때 도움을 주었던 한신을 끝내 죽이고 말았다. 이 일화를 통해 사냥개는 토끼를 잡아 쓰임을 다하면 잡아 먹힌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유래되었다. 반면 현명한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나 훗날에 위대한 평을 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자.
훗날을 내다보고 권력을 내려놓은 범려
범려(范蠡)는 정치가로서 월나라 왕 구천(勾踐)을 섬겨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춘추시대에 뛰어난 전략가로 이름을 날렸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월나라에 대한 치욕을 씻고자 각고의 노력 끝에 월나라 왕 구천을 사로잡았다. 범려는 구천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나라 왕 부차에게 목숨을 구걸하게 하였다. 구천은 갖은 모욕을 견뎌내며 다시 월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범려의 조언에 따라 월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 노력하였다. 부차는 자만하여 방심하다가 결국 나라도 빼앗기고 목숨도 잃고 말았다.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를 정복하며 여세를 몰아 패왕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범려는 훗날 자신도 구천에게 의심받아 곤경에 처할 수 있음을 알고 성과 이름을 바꾸고 제나라에 가서 살았다. 제나라에서도 그는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몇 년 사이에 큰 부를 쌓았다. 범려는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유명해지면서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재상의 자리에서 올바른 정치를 펼치다가 평범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면서 관직을 반납하고 자식들과 멀리 떠나 은거했다.
한나라 개국공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량
장량(張良)은 유방의 책사로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전략가이다. 장량이 후대 역사가들에게 높은 평을 받는 이유는 유방과 함께 나라를 세운 개국공신들이 모두 곤욕을 치렀지만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장량만은 예외였기 때문이다. 장량은 유방은 초나라 항우를 무너뜨리고 황제가 되자 장량에게 3만 호의 봉읍을 주려 하였다. 당시 3만 호는 신하에게 주는 파격적인 상이었다. 그러나 장량은 유방이 내린 상을 마다하며 쓸모없는 땅을 주길 간청했다. 장량은 뛰어난 처세를 통해 유방의 의심을 피했다. 유방이 거느린 3명의 호걸 중 한신은 주살되었고 소하(蕭何)는 감옥에 갇혔지만 장량만 자기 몸을 보존할 수 있었다. 장량처럼 어진 사람은 안전을 선택하여 처신함으로써 재앙을 피할 수 있다.
뛰어난 능력만 믿고 날뛰다 쓰임을 다하면 버림받는 사람들이 있다.
범려는 구천이 패업을 이루자, 권력을 내려놓고 떠났고
장량은 유방이 내린 큰 상을 마다하여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자기 목숨을 귀하게 여기며 미래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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