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구 집중에 주택난 집값 폭등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국회, 명문대, 대기업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인구 유입이 꾸준히 늘었다. 서울의 인구는 어느새 천만 명이 넘어섰다. 지방에서 직장과 학교에 다니기 위해 계속 인구 유입이 늘어나면서 주택난을 겪었고 전국의 집값 상승까지 이끌었다. 서울의 집값 폭등 수준은 과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의 주요 국정 과제가 서울, 특히 강남지역 집값 안정화가 단골 메뉴가 되기도 했다. 서울 집값 문제는 과거에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에는 각지의 양반들로 밀려들면서 주택난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양 인구 유입 급증, 심각한 주택난
조선은 개국하면서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이에 발맞춰 많은 관리가 한양으로 생활 터전을 옮겨야 했기 때문에 인구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과거시험이 완벽하게 정착되자 관직에 나서기 위해서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집을 짓거나 세 들어 살아야 했다. 또 주택을 지을 공간이 한정적이어서 자연히 집값이 상승, 집 사기도 어려워졌다. 심지어 퇴계 이황이나 왕비의 어머니도 세 들어 살아야 할 정도였다. 조정도 주택 공급난에 골치가 아팠지만 달리 어쩔 방법이 없었다.
고위 관리가 '쪽방 재테크'로 치부
조선 후기 정조를 보위하는 어영청(御營廳) 대장 윤태연은 한양에 집을 사들여 불법 개조를 하였다. 윤태연은 10칸 남짓 되는 집을 아침에 10칸 저녁에 10칸을 늘렸다고 한다. 하루 만에 방 10칸 집이 30칸 집으로 된 것이다. 그렇게 칸수를 늘려서 더 많은 세입자를 받는 월세 장사를 하였다. 요즘으로 따지면 지방에서 올라온 돈 없는 청년들이 머물 곳이 없어 3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난한 지방 출신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집 없는 서러움을 겪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양반이 신분 내세워 상민 집 빼앗기도
한양에서는 집이 너무 비싸서 매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세 들어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양반에게 세를 내주다 집을 뺏기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현종 4년 1663년 5월 23일 관리가 여장하고 상민의 집에 들어가 내 집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 양민 중에는 양반에게 집을 뺏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지체 높은 양반들도 한양살이가 팍팍하여 체면을 내팽개치고 상민 집을 뺏으려고 했다니 비싼 집값에서 빚어진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수도는 어떤 나라든 인구가 모이기 때문에 주택난을 겪는다.
조선 개국 이후 수도 한양은 급증하는 유입 인구 때문에 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렸다.
일부 관리나 양반은 권력과 신분을 이용, 상민의 집을 빼앗는 사례까지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 수도 한양, 한국의 수도 서울은 늘 주택난과 비싼 집값이 골칫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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