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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한국의 시대별 혼수 예단

by JadeWolveS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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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웨딩 바람이 부는 한국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결혼 비용을 대는 데 크게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을 위해서는 신랑 신부 양가는 값비싼 혼수 및 예단과 집 확보 등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들 사이에서는 결혼식을 하지 않거나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스몰웨딩을 점점 선호하는 추세다. 사랑하는 짝이 있어도 경제적 여건 때문에 결혼을 미루기도 하고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다. 골칫거리가 된 혼수와 예단, 과거에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출처: 네이버]

 

고구려 '사랑하는 마음'이 혼수

동이열전(東夷列傳)을 보면 고구려 결혼 풍속은 남녀가 좋아하면 그로써 혼인이 성사된다. 신랑집에서 돼지고기와 술을 보낼 뿐 다른 재물을 보내지 않았다. 신붓집은 '재물을 받는 것은 딸을 파는 행위라고 수치스럽게 여긴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고구려시대는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결혼하여 부부가 될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신라 왕족 혼수 '먹는 음식' 집중

신라 31대 임금 신문왕은 폐백 15수레, 양념·반찬 135수레, 곡식 150수레를 혼수로 보냈다. 양념과 반찬 중에 젓갈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에는 젓갈이 흔한 음식이지만 그 당시에는 소금으로 만든 젓갈이 귀해서 혼수로 쓰였다. 왕족의 혼수는 먹는 음식에 집중이 되어 있었고 조금씩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려 혼수 중국산 비단 꼭 포함

고려시대부터 혼수 품목의 기본 구성이 있었다. 중국산 고급 비단은 혼수에 꼭 포함해야 했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 비단을 선호하던 시대에 고려 귀족들도 중국 비단을 갖고 싶어 했다. 또 혼인 잔치는 위세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성대하게 치렀다. 갈수록 사치가 심해지자 고려 조정에서는 혼수 품목 중 비단을 무명으로 사용하라 명령하고 잔치 음식까지 제한했다. 결혼이 집안끼리 세를 과시하는 목적으로 쓰이면서 혼수에 대한 부담이 커져 정부까지 나서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 혼수·예단 빠지면 혼사 취소 가능

조선은 송나라 주자(朱子)가 지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전국에 보급하며 혼인에 대한 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허울뿐 혼수와 예단이 빠지면 결혼을 취소할 수 있었다. 또 혼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자 정부가 혼수 비용을 지원해주기까지 했다. 양반들의 혼례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집을 사는데도 중인들의 집값의 10배나 들었다. 전라남도의 한 종갓집은 결혼 비용이 집값을 제외하고 309원이 들었는데 현재 시세로 3,000만 원 정도였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부모들은
자식 결혼을 시키려면 만만찮은 혼수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
그런데 고구려 때 가장 큰 결혼 조건은 남녀의 사랑만 있으면 가능했다.
신라 때는 먹는 음식을, 고려 땐 비단을 중요한 혼수 목록으로 삼았다.
조선 때는 혼수와 예단이 없으면 결혼 취소의 사유로 꼽히기도 했다.
요즘 많은 젊은이가 허례허식이 아닌 ‘사랑’ 하나만 붙잡고 결혼이 가능했던
고구려 시대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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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살이는 오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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