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자동차 산업을 키워낸 이유는
세계 1, 2차 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현재 벤츠, BMW, 폭스바겐 등 세계 자동차 시장의 선두 기업들을 가지고 있다. 독일은 어떻게 해서 영국과 프랑스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자동차 산업을 키워 낼 수 있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독일의 기술이 앞섰다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의 기술 발전이 더뎠다가 맞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자동차 산업을 업그레이드시킨 인물은 히틀러였다.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군수 산업의 발전 덕분에 엔진의 발전을 가속화 했다. 그렇다면 영국과 프랑스는 어떤 이유로 자동차 산업의 발전이 늦어졌을까.
전쟁터에서 노새를 선택한 나폴레옹
니콜라스-조셉 퀴뇨(Nicolas-Joseph Cugnot)는 1771년 사람이 탈 수 있는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만들었다. 퀴뇨는 프랑스 나폴레옹 군의 포병 대위로 복무하면서 포차의 견인을 목적으로 증기엔진 구동 차량을 고안했었다. 이 증기기관차는 사람 4명을 태우고 시속 4km의 속도로 느릿느릿 달렸다. 그러나 엄청난 소음과 매연을 내뿜었으며 증기가 바닥나자 얼마 못 가 멈춰버렸다. 나폴레옹은 군사 과학 기술에 힘썼지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포(砲)를 즉시 이동시키지 못하는 증기기관차의 실용성에 회의감을 가졌다. 그는 결국 노새가 포를 끌도록 했고 증기기관차를 전투에 사용하는 것을 완전히 배제했다. 나폴레옹의 이런 조치는 프랑스의 증기기관차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마차 업계 압박, 자동차 산업의 족쇄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게 된다.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되었고, 거대한 힘을 움직여 다양한 기계가 만들어졌다. 영국에서는 증기 자동차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자동차는 마차보다 운임도 싸고 동시에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
그러나 마부들은 지치지 않는 기계를 보며 자신들의 일자리에 위협을 느꼈다. 마부 업계는 영국 정치인들을 압박, 증기차 업계에 족쇄를 채우는 적기조례를 만들도록 강요했다. 적기조례로 인해 영국의 증기차 업계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증기기관의 설계자들은 독일과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마부 업계의 여론에 떠밀려 미래를 보지 못한 영국 정치인들. 그들 때문에 영국은 미래의 큰 부가가치를 만들 자동차 산업의 선두에서 스스로 내려와 버린 꼴이 되었다.
히틀러를 앞세운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덕분에
후발 주자 독일은 세계 자동차 산업의 선두로 올라설 수 있었다.
최초의 발명, 최고의 기술이 있더라도 국가적인 지원 전략이 없다면
선두에서 탈락, 추격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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