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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인재 식견

한국의 진정한 부자는 누구였을까? <1부>

by JadeWolveS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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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광복절 특사에는 재계 총수가 대거 포함돼

1945년 8월 15일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독립일을 기리며 일제에 맞서 싸워 독립을 쟁취한 선조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한 날이다. 그리하여 정부는 매년 8월 15일이 되면 광복절 특별 사면을 통해 가벼운 처벌을 받은 소시민부터 고위 공직자까지 국가 통합을 위해 형 집행을 멈추고 사면을 해주고 있다. 23년 광복절 사면에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재계 총수들의 사면이 두드러지게 많았다. 총수들은 더 많은 자산을 가지기 위해 횡령 등 불법을 저지르거나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한 일까지 다양했다. 그래서 한국의 재벌들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게 어려운 것 같다. 반면 조선시대의 진정한 부자들은 독립을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아보자.

▲ 우당 6형제 / 욋줄 왼쪽부터 첫째 이건영(李健榮, 1853~1940), 이석영(李石榮, 1855~1934), 이철영(李哲榮, 1863~1925)-,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이호영(李護榮, 1885~1931?) [출처] [세상사는이야기] 우당 6형제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 내놓은 우당 형제들

우당 이회영(李會榮)을 비롯해 건영, 석영, 철영, 시영, 호영 6형제는 조선 중기 명신 이항복(李恒福)의 10대손이다. 이항복의 후손들은 대대로 조선시대 명문가 집안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에 조선이 흔들리자, 우당 형제들은 기득권을 버리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쳤다. 당시 우당 형제들이 명동 일대에 만 평 부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2,000억 원에 이른다. 6형제가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았고 40명의 가족과 함께 간도로 이주하였다. 간도에서 신흥 무관학교를 세워 2,000명이 넘는 독립군을 키워냈으며 일본과 맞서 싸울 기틀을 마련하였다. 우당 형제들은 아낌없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첫째 이건영은 질병으로 둘째 이석영은 굶어 죽었고 셋째 이철영은 풍토병으로 넷째 이회영은 일본군에게 잡혀 잔인하게 고문당하며 죽었다. 그리고 막내 이호영은 일본군에게 일가족과 함께 몰살당했다. 다섯째 이시영만이 살아남아 조선의 독립을 볼 수 있었다. 조선 말기 기득권 세력이었던 우당 형제들은 나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돈과 권력을 포기하고 독립에 힘썼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부자가 아니었을까?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우) 이상룡 집안 고택 임청각

대대손손 물려받은 임청각까지 판 이상룡

이상룡(李相龍)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사람이다. 국무령은 당시의 대통령에 준하는 직급이었다. 이상룡 집안은 조선 궁궐 다음으로 큰 99칸 집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상룡은 신문물을 배울 협동학교를 지지하다 일본 경찰에게 큰 고초를 치르게 되었다. 그는 조선이 이 상태로 일본에 식민 지배를 당하면 조선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룡은 우당 이회영과 신민회 사람들을 따라 간도로 떠나게 된다. 당시 이상룡이 가지고 있던 자산을 정리하자 800억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이후 그는 간도에서 학도들에게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며 나라를 위해 싸울 것을 강조하였다. 이상룡은 훗날 임시정부의 국무령에 오르게 되었으나 조국이 독립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나라가 독립하거든 자신의 유골을 임청각(臨淸閣)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는 죽은 지 21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임청각에 묻혔다. 당시 일본은 이상룡 집안의 보물과도 같은 임청각의 정기를 끊기 위해 집 중앙에 철도를 놓았다. 지금도 임청각 앞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중부선이 지나가고 있다. 이상룡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집안의 고택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상룡을 살펴보면 진정한 부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아는 듯하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재벌 총수들과 달리
조선 말기 재벌급 부자들은 나라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편함을 버렸고 그들이 지원한 자금력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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