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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인재 식견

'고려의 이순신' 최무선

by JadeWolveS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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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이자 무인인 최무선

고려(高麗)는 본디 해상력이 강한 국가였다. 태조 왕건(王建)이 해군 활동을 통해서 고려를 세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가 조선술과 해상무역에서 탁월했다는 사실은 지금 한국의 명칭만 보아도 알 수 있다. 'KOREA'고려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이집트까지도 교류했던 고려. 해상 강국의 위풍당당함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 항복하면서 무너지게 된다. 고려 말기 전국에 왜적이 들끓어 수도까지 위태로울 정도였다. 전란 속에 영웅이 나오듯 최영(崔瑩), 최무선(崔茂宣), 이성계(李成桂) 등 특출 난 무인들이 왜적의 침략을 막았다. 최무선은 최초로 화약을 만든 인물로만 알려졌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과학자이자 무인이었다. 그는 진포대첩에서 조선의 이순신처럼 5배나 넘는 왜군의 배를 침몰시켰다. 조선 해군에 이순신(李舜臣)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최무선이 있었다.

[고려 무장 최무선 출처:네이버]

왜구 격퇴의 신무기 화약 개발

최무선의 화약 개발은 어릴 적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최무선의 아버지는 고려의 곡식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은 광흥창 관리였다. 그 당시 고려는 왜적들이 쌀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였고 아버지 곁에 있던 최무선은 왜구를 물리칠 방법을 생각했다. 우연히 화약의 위력을 알게 된 최무선은 화약 개발에 착수했다. 주요 성분인 염초(焰硝) 개발에서 난관을 겪었지만, 중국에서 온 상인 이원(李元)이 최무선의 열정에 감동하여 기술을 전수했다. 최무선은 화약 제조가 가능해지자 화약을 개발하는 기관을 만들 것을 고려에 요청하여 화통도감(火㷁都監)을 설치했다.

 

왜선 500척 괴멸시킨 진포대첩 이끌어

국력이 강했던 고려는 몽골에 항복한 뒤 군사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그 결과 왜적의 침략이 전국으로 이어졌고 침략 규모도 훗날 수도까지 위태롭게 할 정도로 커졌다. 1380년 왜적은 500척의 군선을 이끌고 쌀을 약탈하기 위해 진포(鎭浦, 현재의 군산)를 거점으로 전라도로 침략했다. 당시 왜군들이 싸움에 능해 백병전으로 맞붙기에는 고려군은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육지에서의 싸움이 불리할 것으로 판단, 고려 수군은 선상 전투를 결정했다. 병법에 능했던 최무선은 배 위에 화포를 설치하고 왜군을 기다렸다. 왜군은 500척이라는 대군단을 이끌고 덤볐지만, 최무선의 화포의 위력과 전략에 단 한 척도 남기지 못하고 괴멸되었다.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가장 많이 침몰시킨 왜선 규모가 200척인 것을 생각하면 최무선의 승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전 세계 수군 역사상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냈던 고려 때의 진포대첩이 우리 역사 속에 숨 쉬고 있다.

 

무인으로서 왜군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화약 개발에 힘써 고려를 구한 최무선.
그는 자신이 개발한 ‘신무기’ 화약으로 왜선 500척을 괴멸시킨 진포대첩을 이끌었다.
지금도 뛰어난 인재들이 군인으로 투신, 나라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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