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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교육 식견

제사는 누구를 위한걸까?

by JadeWolveS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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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의 시작, 언제부터?

제사(祭祀)는 돌아가신 조상에게 음식을 바치며 추모하는 의식으로 한국과 중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제사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 제사는 고려시대 4대 왕 광종(光宗) 때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종은 중국 후주(後周) 출신 쌍기(雙冀)를 통해 유학을 들여왔다. 쌍기는 광종 7년(서기 956년) 봉책사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 머물게 되었고 고려에 귀화,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인물이다. 불교를 숭상하는 고려가 국가 기반을 다지는데 유교적인 체제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유학이 고려에 유입이 되면서 조상에 대한 예의와 격식을 갖추는 문화도 자리 잡게 되었다. 유교를 신봉하는 신하들 사이에서 제사의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고,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제사 문화가 확실히 정착했다. 따라서 한반도 역사 5천 년에 제사의 역사는 600년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남성 중심 체제를 갖추기 위한 시스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다양한 영역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특히 큰 차이라면 국가 정치 체계의 기반이 되는 사상일 것이다. 고려는 불교를 중심으로 국가체제가 만들어졌으며 남녀 간 차별을 크게 두지 않았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유산을 똑같이 상속한 사실만 보더라도 고려시대에는 여성들도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 심지어 자식간에 남녀 구분 없이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오히려 남자보다 강한 힘을 지닌 여성이 있었는데 바로 천추태후(千秋太后)라는 인물이다. 고려 7대 임금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는 강력한 고려를 꿈꾸며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여장부로 그려진다. 그러나 조선의 유학 사상 입장에서는 천추태후를 상당히 그릇된 여인으로 평가한다. 왕이자 남편인 성종이 죽은 후 천추태후가 다른 남자를 둔 일부터 국가의 대소사에까지 관여한 부분 등이 그것이다. 조선왕조는 유학을 정치체제 기반으로 여인들의 입김을 차단하고 남성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 시스템 중의 하나가 제사였다. 제사를 지내는 장남에게는 전 재산의 2/3를 나눠주고 나머지는 남은 자식 중에 아들에게 나눠주도록 명시하였다. 재산은 권력이 될 수 있으니 여성이 남성만큼 동등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근원을 차단하고자 한 듯하다. 제사를 통해 가부장제 문화가 자리를 잡았으며, 여자들의 지위는 급속도로 낮아지기 시작하였다.

 

남자가 제사 음식을 만들어

조선시대에는 제사의 모든 과정을 남자들이 도맡았다. 지금까지도 일부 종가에서는 음식 준비부터 제를 지내는 과정을 남자들이 맡아서 처리하고 있다. 남자들이 음식을 만드니 간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제사 음식을 여성이 준비하고 남자들만이 조상들의 혼을 기리는 제사 문화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 후기에 영조와 정조를 거치며 많은 재산을 축적한 평민과 중인들은 양반 첩을 사들였다. 이때부터 상다리가 부러지게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등 양반이라는 신분을 과시하려는 허례허식의 문화가 생겨났다. 이는 조상들에게 정성을 바치는 것보다 남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로 정착,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제사 문화

해방 이후 최근까지 제사를 모시는 장남은 결혼 상대로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여성 입장에서는 시집살이 가운데 제사가 힘든 의무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세태는 변해서 장손 집안의 맏며느리에게도 제사의 고통을 짊어지게 할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집안은 아예 명절에도 차례를 지내지 않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여러 제사를 모으는 합사(合祀)로 예를 표하는 등 간소화 바람이 일고 있다. 이는 여권(女權) 신장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제사 문화가 확 바뀌어가고 있다.

제사, 본래의 목적으로

조상을 기리는 마음으로 시작된 문화가 제사이다. 그렇다면 본래의 목적에 맞게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상으로만 기리려 하지 말고 부모님 살아계실 때 더 많이 효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 제삿날은 오랜만에 형제자매 후손들이 다 모여 화합을 다지는 ‘가족 단합의 날’로 삼는 것은 어떨까. 어린 자녀들은 조상들의 무용담, 애환을 추억하고 가족 화합까지 다질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아름다운 전통은 대대손손 이어지는 게 맞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가족 친지 간의 화합을 다지는 장이 될 수 있다면
제사는 꼭 지켜져야 할 전통이다.
상 부러지게 만든 음식으로 돌아가신 조상 모시는 것보다
살아 계신 부모님 알뜰살뜰 모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을 어린 자녀는 다 보고 느끼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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