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발 정준호의 인맥관리 비법 공개
배우 정준호(55)가 연예계 마당발다운 인맥 관리 비법을 공개하며 정계 진출에 대한 여지를 남겼습니다. MBC TV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그는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지인만 1만 5000명이라며 대한민국 웬만한 데는 연결이 안 되는 곳이 없다고 인맥을 자랑했습니다. 정준호는 "1년에 경조사 화환을 2500개까지 보내며 2억까지 쓴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그가 인맥 관리를 하는 이유는 어릴 적 할아버지가 항상 어딜 가든 인사를 시켰으며, 사람 관계를 무척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고 말했습니다. 우연히 곤란한 일이 생겨도 인맥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경험을 통해 그는 인맥관리를 더 철저하게 신경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당발인 그는 실제로 정치권에서 공천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주변에서는 정치해 보라고 그를 부추긴다고 합니다. 정준호는 "마음속으로만 5선 의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치는 또 생물이니까요. 기회가 되면 또 그때 가서”라고 말하며 정치에 열린 결말을 두었습니다. 인맥왕이라 불리는 정준호보다 폭넓고 대단한 인맥관리로 정평이 나있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인맥왕 키케로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년~기원전 43년)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웅변가, 철학자, 법률가였습니다. 그는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 체제를 강력히 지지하며 독재를 반대했습니다. 특히 기원전 63년, 카틸리나 음모 사건을 폭로하고 반란을 저지하며 명성을 쌓았습니다.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웅변가로 평가받으며, 강력한 설득력과 논리를 바탕으로 수많은 연설을 남겼다.
그의 웅변술과 글쓰기는 오늘날까지도 정치와 법률 분야에서 교과서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그는 철학자로서 스토아 철학과 플라톤 철학을 로마에 전파하며, 《국가론(De Re Publica)》, 《의무론(De Officiis)》, 《우정에 대하여(Laelius de Amicitia)》 등의 저서를 통해 윤리, 정치, 인간관계에 대한 사상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키케로의 정치적 입지는 불안정했고, 그는 카이사르 암살 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강하게 비판하며 결국 기원전 43년, 키케로는 도망치던 중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인맥으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였습니다. 키케로의 인맥 관리 비결은 어떠했을까요?
키케로 서신 교환을 통한 관계 유지
키케로의 가장 두드러진 인맥 관리 전략은 광범위한 서신 교환이었습니다. 그는 약 900여 통의 편지를 남겼으며, 이는 당시 로마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지속적으로 소통했음을 보여줍니다. 정기적으로 로마의 정치인, 지식인,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로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서신을 통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편지에는 정치적 조언, 개인적 안부, 철학적 논의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후원 관계 구축하여 정치적 입지를 다진 키케로
로마 사회에서 중요했던 후원자(patron)와 피후원자(client) 관계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키케로는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후원을 받으며 정치적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점점 자신의 지위가 올라가자 자신의 든든한 정치 조력자를 찾기 위해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돈만 지원했던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무료로 변론을 제공하면 신뢰와 정치적 지지자를 확보했습니다.
연설과 사교 모임을 통한 다양한 계층을 만난 키케로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웅변가로 알려졌으며, 그의 연설은 단순한 법정 변론을 넘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는 공화정을 수호하려는 입장에서 원로원 및 로마 시민들에게 영향력 있는 연설을 했고, 이를 통해 정치적 동지들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로마 귀족 사회에서 열리는 각종 사교 모임(연회, 경기, 공공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적 배경이 다른 여러 집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원로원 의원들과 정치적 동맹을 맺었고, 에퀴테스(기사) 계층 출신으로서 상인과 사업가 집단과 강한 유대를 유지했습니다. 로마에 국한하지 않고 그는 이탈리아 각 지역의 유력자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피정 복지인 그리스 철학자, 시인 등 지식인들과도 교류했습니다.
실리적관계 유지하며 정치적 위기 벗어난 키케로
키케로는 관계를 사적인 단계를 뛰어넘어 실용적인 정치적 이익을 고려하여 인맥을 관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카이사르를 경계했지만, 그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점이 대표적입니다. 키케로는 자신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인맥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추방되었을 때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정치적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동맹 관계를 조정했습니다. 키케로의 인맥 관리는 단순한 친분 유지를 넘어 로마 공화정의 복잡한 정치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습니다. 그의 방식은 오늘날에도 인맥 관리의 중요성과 전략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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