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대통령의 짜릿한 승부수
기업을 만들고 나라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할까? 정확하게 딱 몇 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창업 멤버나 개국 공신은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제대로 된 한 명만 내 편으로 만든다면 힘들고 어려운 길도 헤쳐 나갈 수 있다. 곁에 어떤 사람들을 두는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다. 미국 35대 대통령 케네디는 한 명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극적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짜릿하면서 감동적인 그때의 일화를 살펴보자.
케네디와 닉슨의 엇갈린 판단
미국의 인권운동가이자 목사인 마틴 루터 킹은 1960년 10월 19일 애틀랜타 리치 백화점 식당에서 인종 분리 시위에 동참하다 체포되었다. 마틴 루터 킹의 아내는 킹의 오랜 친구였던 닉슨 대통령 후보를 찾아가 남편의 사면을 요청했다. 그러나 닉슨은 백인들의 표를 잃을 수 있다는 참모진의 의견에 따라 오랜 친구인 킹 목사를 감옥에서 빼주는 일을 외면했다. 킹 목사의 아내는 닉슨의 상대편 후보인 케네디 대통령 후보에게 남편을 감옥에서 꺼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케네디는 닉슨에게 지고 있던 상황에서 흑인들의 지지를 끌어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판사에게 킹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킹 목사 석방이 대선 승패 갈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석방되자 흑인들은 케네디에게 표를 주기 시작했다. 케네디는 상대측 후보이며 부통령인 닉슨을 상대로 일리노이주에서 0.19%, 텍사스주에서 2%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이기며 선거인단이 많은 2개의 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전체 투표에서 케네디는 리처드 닉슨에 0.16% 차로 앞서며 미국 역대 대선 이래 가장 적은 투표수 차이를 보였다. 닉슨은 오랜 친구였던 킹 목사를 외면한 결과 대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중요한 순간에 내 편으로 만든 한 명이 케네디에게 대통령이 될 기회를 안겼다.
케네디는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인 킹 목사를 외면하지 않았다.
킹 목사는 결국 케네디가 불리한 대선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그러나 오랜 친구였던 닉슨은 킹 목사를 외면함으로써
대선에 패배, 소탐대실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큰일을 도모할 때 ‘제대로 된’ 한 명이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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